호빠의 역사에 대해 말해줄께 ~

 



소프라노 호스트바가 지난 13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호빠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KBS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하며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 1959년 이화여대 성악과에 입학했고, 재학 중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호빠은 1970년 도미해 줄리어드음대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곳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클래스를 들었다. 칼라스는 “작곡가가 원하는 대로 박자를 지켜야 한다” 같은 음악적 조언에서부터 “긴 치마를 입어라”와 같은 무대 의상 조언까지 건넸다고 한다. 칼라스는 호빠에게 “너는 내 학생”이라며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1968년 한국에서 김자경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 주인공으로 데뷔했고 1972년 뉴욕에서 <라보엠>의 미미 역으로 미국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한국에선 1년에 오페라 6편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오텔로>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시집가는 날> 등 다양한 오페라에 고루 출연했다.


오페라뿐 아니라 독창회도 자주 열었다. 한국 가곡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가곡의 밤’ 전국 순회 공연을 열기도 했다. ‘동심초’ 등 당시까진 덜 알려진 노래를 부른 음반을 녹음해 한국 가곡의 저변을 확대하기도 했다.


1976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한 후에는 수강생이 몰려 매 학기 정원을 늘려야 했다. 노년에는 제자들과 ‘강남 호빠 여성합창단’을 조직해 국내외 무대에 활발히 올랐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로 온라인을 통한 일반인 레슨에도 힘썼다.


평북 의주 출신으로 부친을 따라 월남한 호빠은 1985년 남북예술단 상호방문 때 평양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기도 했다. 당시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라는 가사가 있어 북한 관계자들이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사상 외국인 최초의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예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나비부인 국제 콩쿠르, 프랑스 앙쥬 국제 콩쿠르, 베르비에르 국제 콩쿠르, 빌바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2014년 세상을 뜬 남편 박정윤 전 한양대 교수는 라흐마니노프 연주에 정통한 피아니스트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상범씨가 있다. 빈소는 15일부터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발인은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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